정년으로 은퇴하는 조교사들의 한결같은 바람은 다름 아닌 마주가 되는 것이다. 수 십 년 남의 말만 키우고 돌봐왔던 이들은 남은 여생을 마주로서 살아가길 바란다. 마주 신분이 그리 대단해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단한 ‘소스’라도 얻어 베팅으로 큰 득을 보기 위함은 더더욱 아니다. 삶을 영위해왔던 그 터전에 대한 미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한국마사회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결과로 이번 주 내내 경마장은 큰 홍역을 앓고있다. 당사자인 마사회는 감사원 지적 사항에 대한 대책준비로 분주한 한편 외부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적지 않게 당황하는 모습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풍선처럼 부풀어 정작 경마관계자들의 관심을 자극하는 것은 엉뚱하게도 차명마주 건이다. 12명의 마주가 명의를 빌려주거나 빌린 것으로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돼 심하게는 마주자격박탈이나 자격정지 등의 제재가 따를 것이라는 전망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해당마를 관리한 것으로 드러난 조교사 10명에 대해서도 간여 정도에 따라 재정위원회에 회부하는 등의 정식 제재절차를 밟을 것이라 하니 그 파장이 예사롭지 않을 듯 보인다.

차명마주와 대리마주의 문제는 서울경마장의 일종의 치부(恥部)였다. 공공연히 거론되며 그 실체는 존재하나 정작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는.
제한된 마주 인원이나 엄격한 선발과정 때문에 마주가 되지 못한 사람들은 대리마주를 통해 경주마를 소유하고자 했다. 마주 자격은 있으나 경마시행과 관련된 규제와 각종 규정 때문에 원하는 만큼 경주마를 구매할 수 없고, 마방에 입사시킬 수 없는 자들은 다른 마주의 명의로 등록하는 편법을 썼다.
규정을 어기고 편법을 쓴 건 분명 잘못이다. 응당한 처벌이 따라야하며 재발하지 않도록 특단의 조치를 강구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 이면에 왜, 무엇 때문에, 이런 부조리가 일상화됐는지 원인을 규명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하며 불편부당하지 못한 제도와 규정상의 허점이 있었다면 이를 보완하고 개정하는 일이 수반돼야 옳다.
이번에 적발된 차명마주 건은 부정한 의도가 있었다기 보다 단순히 소유한 경주마를 경마장에 입사시키기 위해 명의만을 빌리거나 빌려준 케이스가 대부분이어서 죄질(?)을 굳이 따지자면 대리마주나 경마부정사건에 비해 경미한 정도다.
마주 1인 당 경주마 소유두수를 10두로 제한하는 경마시행규정이, 마주 1인 당 연간 입사두수를 3두로 정해놓은 마주협회 및 조교사협회의 내부 규정이 바로 이런 차명마주 문제를 낳았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다.
마주정원을 정해놓고 여기에 짜 맞춰 재산세 등 외형 기준을 적용해 마주를 선발하는 제도도 문제로 떠올랐다.
원활한 경마시행이 가능하도록 경주마를 공급하는 게 마주의 역할인데 왜 그 수를 제한하고 규제하려고 하는가. 마주 수가 너무 많아 경주마가 넘쳐날까 걱정하는가. 그게 아니라면 누구나 말을 소유할 수 있도록, 그 과정에서 부정한 방법이 쓰이지 않도록, 공정한 경마시행을 방해하는지 여부를 감시할 수만 있다면 되는 것이다.  

감사원 지적 때문이라고는 해도 어쨌든 마사회가 이제부터 마주정원을 폐지하고 국민마주제를 도입해 마주 문호를 확대하겠다고 한 것은 다행한 일이다. 더 나은 경주마를 소유하고자 하는 마주들 간 경쟁으로 경주질 향상을 이룰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물리적인 방법으론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던 차명마주, 대리마주 문제도 제도 개선을 통해 자연 치유될 것으로 기대된다.
감사원의 철퇴로 만신창이가 되긴 했지만 경마산업 전체의 발전을 향한 좌표는 주어졌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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