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회장배를 앞두고 출전하는 조교사들에게 작전과 상태를 물었다.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두 달 이상씩 준비해 왔을 터이니 상태야 모두 최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김문갑 조교사는 작전이란 소리에 입을 굳게 다물었다. 집요하게 묻는 본지 기자에게 “전쟁터에서 내가 여기 숨어 있다고 적에게 말하는 꼴”이라며 시큰둥해 했다는 후문.

그리고 경주가 시작됐다. ‘무패강자’는 작정한 듯 선행에 나왔고 승부는 거기서 끝났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10마신 차 낙승이었다. 작전을 말하지 않겠다던 김문갑 조교사의 ‘의뭉스런’ 고집을 떠올리며 피식 웃음이 났다.

경주 경험이 부족한 3세마가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기습이 필요했고 그것은 선행 승부수였다. 그리고 그 승부수는 제대로 적중했다. 그러면서 일부에서 제기했던 ‘컨디션 이상設’까지 철저히 비웃어 준 셈이니 본인으로선 어찌 통쾌하지 않을 수 있으랴.

1년 내내 말(馬)이 넘쳐 나는 53조. 그것도 한 두 푼 하는 ‘그저 그런’ 말이 아니라 웬만한 아파트 전셋값에 육박하는 고가마가 수두룩하다. 이유가 궁금해 한 마주에게 물었다. “승부사로서의 근성이 좋고 짧은 연륜에 걸맞지 않는 깊이가 맘에 든다”는 대답이다.

문득 지난해 한 경마팬이 마사회 게시판에 공개적으로 김문갑 조교사의 무능을 탓하며 그 마주에게 말을 빼라는 요청을 했던 일이 떠올랐다. ‘블랙페가수스’와 ‘핵돌풍’의 잇단 퇴사 후 마주의 심기가 편치 않은 상황이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 마주는 소속조를 바꾸는 악수(惡手) 대신 지난 얘기를 털어 놨다. 말 한 마리를 구입하기 위해 4일 간 미국 경매에서 1200마리를 보러 다니던 때의 고생담, 그랬던 ‘골드머니’가 산통에 걸려 죽을 뻔했고 이를 밤샘 간호하며 살려냈던 일화 등을 자세히 알려주며 경마팬을 설득하고 조교사를 감쌌다. 이에 그치지 않고 올 봄엔 9000만 원 짜리 초고가마를 구입해 관리를 맡기기까지 했다. 지극히 계산적일 수 있는 관계지만 조교사는 조교사로서, 마주는 마주로서 각자가 제 위치를 고수하며 제 역할만큼만 해주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금은 마방 지역에 취재를 잘 다니지 않지만 예전 건성으로 지나치며 느꼈던 ‘건들거림’이나 ‘투박한’ 이미지를 떠올리면 그의 이런 섬세함이나 숨겨진 열정이 도통 매치가 되지 않지만 조교사로서 그의 능력은 최고다.

일부에선 말이 지닌 잠재력·능력에 비해 경주성적이나 수명이 짧다는 지적도 한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말을 골라내고 잠재력을 키워내는 그의 능력이 매우 탁월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는 손에 남들보다 큰 떡을 쥐고 있기만 한 게 아니라 자신의 떡이 더 크게 보이게끔 만들 줄 아는 조교사다. 그가 외산마 구매에 있어 확인된 능력마보다 검증되지 않은 2세마 쪽에 치중하는 것도 그래서다. 같은 값이면 플러스 α를 극대화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이다.

‘무패강자’도 그랬다. 그보다 앞서 서 너 명의 조교사와 마주들이 ‘무패강자’의 주인이 될 뻔했지만 왜소한 체격에 3500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가격을 보며 등을 돌렸던 반면 김문갑 조교사는 자신이 키워낼 수 있으리란 희망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리고 단 1년 새에 빈약했던 ‘무패강자’는 480kg 대의 당당한 체구로 변신했고 한국마사회장배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런 결실을 이끌어 낸 김문갑 조교사나 53조 마방 식구들, 53조 모든 마주들의 빈틈없는 뒷받침과 노고에 대해 사심 없이 축하의 말을 전한다.

보란듯이 최고 대회에 도전장을 내밀고 당당하게 우승컵을 차지했으면 그걸로 된 것이다. 다음엔 어떨 것이라느니, 나올 말이 안 나왔다느니, 견제 없이 쉬운 전개였다느니 하는 식의 평가는 괜한 흠집내기다. 승부에서 ‘다음’이 어디 있고, ‘만일’을 생각할 필요가 뭐 있나.

‘무패강자’ 하나로 조교사 김문갑에 대한 평가는 달라졌다. 항상 정점 근처를 맴돌면서도 정작 최고라는 찬사 앞에서는 인색한 평을 받아야 했던 김문갑이지만 마사회장배에서만큼은 완벽한 승리자였다.
그의 다음 승부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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