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신마 ‘승유신화’가 데뷔전에서 1000m 신기록을 수립했다. ‘마(魔)의 1분 대’로 불리며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것 같던 벽이 이제 갓 28개월 된 2세마에 의해 깨진 것이다. 그의 1000m 주파기록은 59초 플랫. 서울경마장 말이 맞나 의심될 정도로 놀라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여타 거리와 달리 1000m 주파기록이 이처럼 깨지지 않았던 이유는 하위군 경주에만 편성되는 최단거리라는 점에서 가장 큰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즉, 능력이 떨어지거나 이제 갓 데뷔한 신마들이 주로 치르는 단거리이기 때문에 어지간한 능력마가 최선을 다하지 않고서야 기록 경신이 쉽지 않다는 의미다.

경마가 순위의 게임이라 하더라도 ‘승유신화’의 이번 기록은 충분한 가치와 의의를 지닌다. 이는 우리 경마장의 경주마 수준, 즉 경마의 수준이 향상되고 있음을 입증하는 절대적 자료라는 점에서 이해돼야 하기 때문이다.

경마의 수준을 가늠하는데는 해당 경마장 경주마의 수준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이때는 국제경주 성적, 혈통, 씨수말의 교배료 등이 우선 고려되지만 이외 주파기록도 중요한 판단자료로서 활용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 경주마의 1000m 1분 대 진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욱이 국내 모래주로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벼운 미국의 더트주로였다면 기록은 더 빨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국내 전문가들은 말한다.

어쨌든 국내에서 생산된 마필이라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런 능력을 보유한 경주마를 수입했다는 것만도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 국내로 도입되고 있는 외산마의 면면을 살펴보면 과거에 비해 확실히 달라진 점을 알 수 있다. 일단 눈에 띄는 것이 혈통이다. 미스터프로스펙터(섭서디), 에이피인디(치프피트), 컨퀘스타도르씨에로(라퓨터), 하이일드(포나인), 언브라이들즈송(스페셜러, 더그레이트모굴) 등 세계 리딩사이어 상위권에 오른 씨수말의 자마들이 속속 서울경마장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교배료만 우리 돈으로 5억 원에 달하는 세계 굴지의 씨수말의 자마가 이곳 서울경마장에서 뛰고 있단 소리다.  

중요한 것은 그래서 이들의 경주력이 그 유명한 혈통만큼이나 인정받고 있는가하는 문제다.

선진국에 비해 뒤떨어지는 경마를 시행한다는 서울경마장의 실태를 생각하면 이들은 당연히 최정상급에 올라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실상은 꼭 그렇지 만도 않다는 게 문제다. 이는 육성과 관리체계, 그리고 경주시스템 및 시설 등 종합적인 경마환경에서 원인을 찾고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체계적인 사양관리, 영양관리가 이뤄지지 못하고 열악한 마방 시설에 방치되며 경주마 가격에 턱없이 못 미치는 경마상금규모로는 그 자질을 채 꽃피우기도 전에 도태되는 지경에 처할 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사정은 국산마라고 다르지 않다.
10억 원이 넘는 우수 혈통의 씨수말이 도입돼 생산에 활용되고 있지만 여전히 국산마의 경주력은 세계 시장에서 밑바닥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은가. 마사회 내 한 육성전문가는 국내 육성과정의 문제점으로 열악한 초지, 젖 뗄 때까지의 기초 사양 및 영양관리, 그리고 생산자들의 전문 기술이나 지식 부족 등을 꼽는다.

이는 곧 전문 인력이 없단 소리고, 자본이 부족하단 소리다. 경주마 생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우수마 도입을 적극 장려하면서도 정작 육성에 관한 정책은 왜 마련하지 않는가. 축산장려금으로 매년 수백억 원씩 출현하는 마사회와 농림부가 그 중 일부를 우리 생산자들에게만 써도 효과는 당장 나타날 것이다. 하다못해 매년 생산자들 중 일부를 선발해 해외 장기 연수를 보내고 이를 정례화한다면 그 결실은 훨씬 크지 않겠는가.

아무리 좋은 씨앗을 심는다 한들 전문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채 적당한 양의 밑걸음을 주지 않고 제 때 분갈이를 해주지 않으면 뿌리는 썩게 마련이고 씨앗만큼 훌륭한 열매는 더더욱 기대할 수 없다.
이번에 신기록을 세운 ‘승유신화’는 1세 때 이미 플로리다에서 3개월 가량 전문적인 기초 육성을 받고 도입됐다고 한다.

국산마 자급률이 어느덧 75%를 상회하고 있다. 부산경마장이 개장하게 되면 매년 생산되는 국산마 두수는 더욱 늘어나게 된다. 이제는 양적으로 얼마나 생산할 것인가가 아닌 질적으로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에 모든 역량을 집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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