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 마을회관 앞에는 ‘濟州馬의 本鄕-衣貴’(제주마의 본향-의귀)이라는 표지석이 서 있다. 조선시대 제주 의귀리에서 키운 말을 바쳐 임금으로부터 ‘숭정대부’(崇政大夫)의 벼슬을 받은 ‘헌마공신’(獻馬功臣) 김만일(金萬鎰.1550∼1632)을 기리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세운 표지석이다.

김만일[1550년~1632년]은 조선 중기의 목장주이며 말사육가이고 공신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중림(重臨), 헌마공신(獻馬貢臣)이다. 1550년(명종 5) 7월 정의현(旌義縣) 의귀에서 출생하였다. 1632년 타계할 때까지 선대의 유업인 말의 개량과 번식에 전념했다. 무과급제를 거쳐 선조 15년에 순천부 방답진 첨절제사를 역임한 뒤 제주로 귀향했다.  

당시 김만일이 소유한 말은 1만필에 달했다. 몽골족의 원나라가 고려 충렬왕 2년(1276년) 제주도에 목마장을 설치한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개인으로는 가장 많은 수의 말을 사육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조정에서는 전마(戰馬)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당시 전쟁의 피해로 전국 대부분의 목장이 제 기능을 잃어버린 상태였고, 따라서 전마를 보충할 방법은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은 제주에서 말을 가져가는 것이었다. 이때 그는 자신의 사둔마(私屯馬) 500필을 조정에 헌납하였고, 이후 광해군과 인조 대에도 정부가 요청하면 그의 사둔마를 제공하였다.

당시 동북아의 정세를 살펴보면 도요토미 히데요시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정권이 교체되는 일본, 명이 몰락하고 누루하치의 청이 등장하는 중국 등 오늘날의 열강들의 형세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광해군의 몰락과 인조반정 등 미증유의 국난이 계속되는 가운데에서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신이 키운 말을 아낌없이 헌납한 김만일의 행적은 더욱 빛을 발하게 한다. 김만일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조선 조정에서 그를 지중추(知中樞) 오위도총관(五衛都摠管)을 제수(除授)하였고, 벼슬은 이후로 계속 증직되어 1629년(인조 6)에는 종1품 숭정대부(崇政大夫) 헌마공신(獻馬功臣)에 이르렀다.

하지만 현재까지 김만일에 대한 역사적 문화적 접근 노력들이 너무 미흡했다. 헌마공신 김만일은 제주의 말(馬)로 창조경제, 창조산업과 창조문화를 이끈 선구자이다.

제주특별자치도(도지사 우근민)는 ‘제주마와 헌마공신 김만일의 공적에 대한 역사적 고찰’ 세미나를 지난 23일 농어업인회관에서 개최했다. 말 관련 행정·생산자단체·농가 등 2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번 세미나에서는 김만일 공의 면모를 재조명해 제주인이 말 사육을 통한 국난 극복에 기여하고 우수 품종의 말 생산을 한 역사적 사실을 제주도 내외로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또 ‘말의 고장’ 제주의 내력을 고찰하고 재조명해 제주 말산업이 제주 사회 형성에 하나의 기초산업이 되었음을 널리 알리기도 했다.

이날 주제 발표에는 강제훈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가 ‘헌마공신 김만일의 말 사육과 그 위상’에 대해, ‘헌마공신 김만일과 말 이야기’를 쓴 소설가 권무일 씨가 ‘헌마공신 김만일 일생에 대한 관점’, 강민수 제주대 교수는 ‘제주 말산업의 과거 현재 미래’를 주제로 발제했다.

또 제주 말산업에 관한 전반적 사안에 대해 채바다 시인, 양영길 문학평론가, 김일우 역사학자, 장덕지 전 제주국제대 교수, 김동윤 제주대 교수 등이 참여해 제주 말산업 발전을 위한 토론도 진행했다.
이번 세미나는 김만일이 제주 말산업에 미친 영향 등을 새롭게 조명하고 제주마의 역사를 일반에 알렸다는 점에서 의의를 둘만하다. 아직도 우리 국민들은 경마=도박이라는 부정적인 편견 때문에 말산업 전체를 곱게 보지 않는 시각이 있다. 이런 때에 김만일공의 행적을 재조명하는 세미나가 열린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작 성 자 : 김문영 kmyoung@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