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성어 중에 복지부동(伏地不動)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원래 군대용어로 쓰이던 말이었다. 전쟁시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배를 땅바닥에 착 깔고 움직이지 않는 상태를 일컫는다. 그런데 이 군대용어는 세월이 흐르면서 공무원들의 업무태도와 연결하는 용어로 더 크게 인식되고 있다. 소위 무사안일(無事安逸)하는 업무태도와 연결시키는 용어로 정착되었다. 일을 하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으니 편안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무사안일에 젖어 복지부동하는 조직원이 많을수록 해당 개인은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고 편안할지 모르지만 그 조직은 결국 퇴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복지부동하는 조직원이 많을수록 그 조직의 미래는 희망이 없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요즘에는 한술 더 떠 석극서목(石隙鼠目)이라는 용어가 회자되고 있다. 즉 ‘쥐새끼가 바위틈에 몸을 숨기고 눈만 내놓고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살핀다’는 뜻으로 기회주의의 극치를 보여주는 용어다. 본디 한자성어에는 이런 말은 없지만 최근 공무원들이나 산하기관 공기업 등의 직원들 사이에 이 용어가 성행하고 있다하니 대한민국의 미래가 암담하기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박근혜 정부의 인사 난맥상은 공무원들의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을 조장하는 것으로 작용해 국민들에게 엄청난 좌절과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대표적으로 ‘윤창준 사건’이 터지더니 이어서 ‘채동욱 검찰총장 사건’ ‘진영 보건복지부장관 사건’이 발생해 국민들의 실망감이 이만저만 아니다.
정부 산하기관이나 공기업 임원인사로 내려가면 더욱 가관이다. 이미 임기가 끝난 기관장의 후임 인사가 이뤄지지 않는 곳이 여럿이다. 또한 이러저러한 이유로 사표를 수리해놓고도 후임기관장을 선임하지 않고 있는 곳도 많다. 후자의 대표적인 기관이 한국마사회다. 전 농림부장관이었던 장태평한국마사회장은 9월2일 사표를 제출하고 9월5일에 이임식을 가졌다.

장태평한국마사회장이 퇴임한지 1개월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후임 회장이 임명되지 않고 있다. 책임질 수장이 없으니 한국마사회가 중요하게 정책을 결정하고 추진해야할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용산장외발매소를 꼽아볼 수 있다. 법이나 규정상으로는 이미 현재의 용산장외발매소를 신장외발매소로 이전 개장을 해야했으나 이를 찬성하는 시민단체와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주장에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급기야 이전을 찬성하는 쪽의 시민단체인 용산문화사랑(김기숙·양종학 공동위원장)이 10월9일 오후 5시부터 KRA신용산장외발매소 앞에서 용산구민과 소통하는 ‘녹색 행복 나누기 실버음악회 한마당’을 개최하면서 조속한 개장을 촉구했다. 용산문화사랑은 신용산장외발매소의 문화 공간을 활용한 지역 문화 발전과 사회공헌을 추진하고자 신용산장외발매소 이전을 촉구하는 주민설명회를 추진해 왔었다.

용산문화사랑 회원과 용산주민, (사)자연사랑, 대한민국플러스청소년연합 어머니봉사단, 그리고 시민단체 회원들이 참가한 이번 음악회에서 김기숙 용산문화사랑 공동위원장은 ‘(신용산장외발매소) 조속한 입주 촉구와 궐기대회’를 갖고 장외발매소 이전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한편, 용산시민연대 등 12개 주민단체로 이뤄진 ‘용산구 화상경마도박장 입점 저지 주민대책위’도 이날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장외발매소 이전을 반대하는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용산장외발매소를 찬성하는 시민단체와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중간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한국마사회의 모습이 안쓰럽기만하다. 伏地不動(복지부동), 石隙鼠木(석극서목)이 회자되는 세태를 그저 웃어넘길 수만 없는 현실이다. 한국마사회는 회장이 공석중일지라도 처리해야 할 일은 처리하는 것이 옳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작 성 자 : 김문영 kmyoung@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