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밍걸`이라는 경주마를 두고 메이져 매체들이 난리다. 신문이며 방송들이 대서특필하며 집중조명하고 있다. 승자독식의 시대에 모자라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알리느라 혈안이 되어 있다. 경향신문과 중앙일보가 특집으로 다루더니 YTN SBS 등 방송들도 96연패한 위대한 꼴찌에게서 희망을 찾느라 야단법석이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 그러니까 지난 2004년 ‘하루우라라’(春うらら= うららな春의 강조 표현, 화창한 봄)라는 경주마를 놓고 일본열도가 들끓었던 적이 있다. 일본열도를 열광시켰던 ‘하루우라라’(당시 암말 8세)는 1996년 홋카이도 미쯔이시 지역의 조그만 목장에서 아비말 ‘닛뽀데이오’와 어미말 ‘히로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루우라라’는 대부분 경마팬들에게 외면당하는 경주마였다. 경마장의 저속한 표현으로 하자면 소위 ‘똥말’ 범주에 속한 ‘하루우라라’는 그래서 중앙경마장에서는 활동하지 못하고 시코쿠 고우치겐(高知縣)에 있는 지방경마장 고우치경마장에서 활동했다. ‘하루우라라’는 113회 경주에 출전하면서도 단 한차례의 우승도 하지 못했다. 이때까지 최고의 성적은 준우승 5회, 3위 7회가 고작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이 경주마를 놓고 희망을 이야기했다. 언젠가는 우승을 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비록 출전할 때마다 우승을 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열심히 달리는 ‘하루우라라’의 모습을 통해 일본인들은 스스로 위안 받고 새로운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하루우라라’는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114전 만에 우승을 차지해 전 일본인들을 감동시켰다.

요즘 한국에서는 을(乙)들의 희망으로 불리는 경주마 ‘차밍걸’(암말, 8세)이 인기다. 한달전에는 경향신문이 이 경주마에 대서특필하더니 지난주에는 중앙일보가 표지에 안내 기사를 게재하고 속지에서는 2면에 걸쳐 ‘위대한 똥말’을 집중조명했다. 지난주 26일(일) 서울경마공원에서 열린 제6경주에 출전했던 ‘차밍걸’은 또 입상에 실패, 96연패를 기록하며 한국경마 연패기록과 현역 경주마 최다출전기록을 갈아 치웠다.

지금까지 최다연패기록은 ‘당나루’가 세웠던 95연패였다. ‘당나루’는 95년 데뷔하여 2000년 6월 95연패라는 대기록(?)을 수립하고 은퇴했다. ‘차밍걸’은 2007년 데뷔했으니 활동기간이나 연패기록은 ‘당나루’와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당나루’의 연패기록을 경신한 ‘차밍걸’은 앞으로도 100전을 향해 역주를 계속할 전망이다. ‘차밍걸’의 팬들은 ‘차밍걸’의 우승여부보다는 ‘차밍걸’이 언제까지 뛸 수 있을 것인지에 더 관심을 쏟고 있다. 을(乙)들에게 인생은 갑(甲)에게 이기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2005년 제주도에서 태어난 ‘차밍걸’은 작은 체구에 폐활량이 작았다. 보통 말 몸무게가 500㎏인데 410㎏밖에 안 되는 약골이었다. 혈통도 그리 좋지 않아 그야말로 경주마로 별 볼일 없는 ‘부진마’였다. 성적부진으로 조기 은퇴를 생각해볼 만도 하지만 변영남(71) 마주는 경주로에 들어서면 죽기 살기로 달리며 매 경기 최선을 다하는 ‘차밍걸’을 포기하지 않았다. 2008년 데뷔 이후 월 2회 꼴로 경주에 참가했지만, 거의 매번 꼴찌를 면치 못했다. 지더라도 꾀부리지 않고 결승선까지 성실히 달리는 ‘차밍걸’의 모습을 통해 노마주는 에게 ‘희망’을 봤다고 했다.  

1등만이 인정받고, 1등만이 가치 있고, 1등이 아닌 나머지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사회 풍조(신자유주의) 그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삶에서 정작 중요한 것들은 숫자로 매길 수 없다. 세상에는 1등보다 더 아름다운 꼴찌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최고보다 더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4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아픈 것은 참을 수 없다’ ‘남을 죽여야만 내가 살 수 있다’.....는 치열한 경쟁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빨리빨리’ ‘이기는 것’에만 익숙해 있는 우리다. 경주마 ‘차밍걸’을 통해서 조금의 위안(힐링)이라도 얻었으면 좋겠다.

작 성 자 : 김문영 kmyoung@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