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섬에서 현 과천 서울경마장 이전을 반년 가량 앞둔 88년 12월, ‘원당1호’가 데뷔전을 치르며 국산마 시대가 열렸다. 그후 국산마로서 경마대회 첫 우승을 차지한 ‘오류천’, 제1회 문화일보배 우승마 ‘화초장’, 그리고 명마 ‘연안부두’의 자마로서 질풍 같은 추입력을 과시한 ‘상승군’ 등 90년대 중반을 이어주는 국산 강호들이 출현했다. 이 가운데 92년 12월 첫 경주를 시작으로, 총전적 65전 15승 2위 16회의 뛰어난 성적을 남긴 ‘봉정암’을 빼놓을 수 없다. ‘당대제일’, ‘새강자’에 앞서 국산 명마 계보를 이끌었으며, 그 당시 기라성 같은 외산마 강호들 틈에서도 결코 주눅들지 않았던 선입형 암말이다. 현재 경주마 퇴역 후 승용마로 활약하고 있는 ‘봉정암’이 절정기의 기량을 뽐냈던 광복 50주년 기념 국산마 특별경주를 되돌아본다.

국산 강호들의 대접전
95년 8월 13일 시행된 광복 50주년 기념 특별경주는 국산마 부문의 경주가 외산마와 분리되어 따로 편성되기 다섯 달 남짓 앞선 시점에서 열렸다. 주권회복 50주년을 기념하며 경주출전 자격을 국산마로 제한해 역사적 의미가 컸었는데, 그 당시 활약한 국산마 가운데 강자급은 모조리 총출동한 경주였다. 외산 강자들을 연파하며 최상위 등급으로 기세 좋게 오른 신예 ‘돌마리’, C1 등급 특별경주에서 3위의 성적을 기록한 국산 강자 ‘화초장’, 그리고 ‘상승군’, ‘봉정암’ 등의 내노라하는 국산마들이 1800m 거리에서 자웅을 겨뤘다. 그때 무렵 특별경주로서는 어마어마한 규모인 총상금 5천만원이 걸렸고, 이에 걸맞게 14두의 국산 강자들이 게이트를 꽉 채우며 박진감을 더했다. 출발신호가 떨어지자 선행마 기승에 능한 이정표 기수의 9번 ‘사랑해’가 선두로 나섰고, 6번 ‘상대성’과 8번 ‘쌍영총’이 뒤를 추격했다. 최고 인기마로 지목된 13번 ‘봉정암’은 큰 무리 없이 4∼5위 권을 형성했고, 막판 추입력이 일품인 3번 ‘상승군’은 최후미에서 선두권을 관망했다. 3코너 초입부분에 이르자, 6번 ‘상대성’이 9번 ‘사랑해’와 힘 겨루기 끝에 선두를 빼앗으며 레이스 흐름이 빨라졌고, 13번 ‘봉정암’, 12번 ‘열정’ 등도 속속 페이스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후미에서 기회를 엿보던 2번 ‘돌마리’, 7번 ‘화초장’, 3번 ‘상승군’이 외곽으로 크게 선회하며 결승주로에 접어들었고, 총 14두의 마필이 큰 격차 없이 뭉치며 막판 스퍼트에 접어들었다. 초반 선두에 나섰던 3두의 마필이 힘이 떨어진 듯 하위권으로 쳐짐과 동시에, 경주 내내 안정적인 중위권을 유지한 13번 ‘봉정암’이 선두로 부상했다. 결국 13번 ‘봉정암’의 뒤를 3번 ‘상승군’이 무서운 추입력을 발휘하며 2파전으로 압축됐고, 박빙의 경합을 벌인 끝에, 목차이의 간격으로 13번 ‘봉정암’이 우승을 차지했다.

정호익 기수
올해 9월 뚝섬배에서 ‘에스빠스’에 기승, 우승을 차지한 바 있는 정호익 기수는 국산마 초기 강자 ‘봉정암’과 호흡을 맞춰 9승의 찰떡궁합을 과시했다. 이날 경주에서 13번 외곽 게이트의 여건을 감안한 안정적인 레이스 전개를 염두에 두고 경주에 임했다는 그는 광복 50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경주에서 우승하는 기쁨을 누렸다.    

【손성호 기자 ssho@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