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공할 괴력의 늦발형 선행마 ‘풀그림’

데뷔 초 4연승 후에 찾아온 두 차례의 입상실패, 그후 경마대회 4승이 담겨있는 6연승 질주, 그리고 오랜 부상재활을 거친 다음의 3연승 불꽃투혼. 바로 가공할 주력으로 과천벌을 정복했던 경주마 ‘풀그림’이다. 경주에 나서면 반대편 직선주로에서 대차이의 간격으로 후속권 마필들을 심심찮게 따돌리던 ‘풀그림’의 역동적인 경주모습. 치명적인 부상공백을 극복하고 1년이 넘는 재활기간 후에 벌인 마지막 3연승 질주는 경마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한편의 드라마로 남아있다. ‘풀그림’의 전성기 시절 모습이 녹아있는 97그랑프리를 소개한다.

스타급 경주마의 총출동
97년 12월 14일 제8경주로 치러진 97그랑프리 경마대회는 팬들의 인기투표로 선정된 그 당시 내노라하는 톱클래스 경주마 9두가 2300m 거리로 열띤 경합을 벌였다. 1억8천만원의 총상금을 놓고 경마대회 3연속 우승을 노리던 최강 ‘풀그림’을 필두로, 그해 마사회장배 우승을 포함한 경마대회 3관왕 ‘아담’, 그리고 추입형 암말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청파’, ‘대해’ 등의 스타급 경주마가 출사표를 던진 대회였다. 여기에 출전한 기수들의 면면 또한 화려해서 각각 97, 96, 95년도 최우수 기수로 선정된 바 있는 김효섭, 박태종, 안병기 기수 등이 고삐를 잡고 있었다. 이렇듯 최고의 흥행성을 지닌 대회답게 하루 최다입장인원이 운집했고, 오후 3시 15분 경 힘찬 출발신호와 함께 숨가쁜 레이스가 펼쳐졌다. 경주의 흐름은 선행불사형의 1번 ‘신세대’를 4번 ‘풀그림’이 4코너 후반까지 추격하는 양상으로 전개됐고, 그 뒤를 2번 ‘흥부’, 5번 ‘싹스킹’과 함께 추입마 들이 줄을 이었다. 팬들의 관심은 ‘신세대’의 선행을 언제쯤 ‘풀그림’이 꺾을 수 있을 것인가에 모아졌는데, 아니나다를까 4코너를 선회할 무렵 ‘풀그림’의 안병기 기수가 바깥쪽으로 크게 선회하며 ‘신세대’를 제껴내기 시작했다. 선두로 나선 ‘풀그림’은 2300m 첫 경험에도 불구하고 지칠 줄 모르는 걸음을 결승선까지 이어갔고, 선입형 ‘아담’의 뒤를 막강 추입력의 ‘청파’가 격차를 좁혀오는 2위권 다툼이 전개됐다. ‘풀그림’이 여유 있는 우승을 확정지은 상태에서, 같은 소속조의 ‘아담’이 ‘청파’를 1마신 차이로 누르며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김충근 조교사
97년 한해 동안 ‘풀그림’과 ‘아담’의 막강 체제를 구축하며 경마대회 6승의 대기록을 세운 김충근 조교사. 이날 그랑프리에서 ‘풀그림’과 ‘아담’이 나란히 1,2위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그랑프리 역사상 우승, 준우승을 동시에 차지한 유일한 조교사로 기록되게 됐다. 그 이듬해 ‘슬레잇런드레이크’라는 걸출한 명마를 다시 배출한 김조교사는 경마대회 통산 10승의 최다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안병기 기수
‘풀그림’의 경마대회 4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과 함께 했던 안병기 기수는 93년 스포츠조선배에서 ‘사투봉’으로 우승하며 비교적 늦게 경마대회 우승과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그후 ‘고대산’, ‘풀그림’, ‘아담’, ‘청파’ 등의 주옥같은 명마를 만나며, 현재는 경마대회 통산 15관왕으로 이 부문 최다승 기수로 도약했다.      

【손성호 기자 ssho@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