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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도 꾸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말일테지만 그래도 그 가능성이 적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터라 정기용 기수에겐 아직도 특별경주의 우승은 얼떨떨하기만 하다.
언론과의 인터뷰 기회가 없어선지 지난해 기수 데뷔 이후 첫 승을 거뒀을 때도 얼떨떨하기만 하다던 그가 특별경주 우승 소감에서도 첫마디에 ‘얼떨떨’이란 단어를 꺼내 놓는다.
시상대에 올랐을 때 마음속으론 웃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마치 표정이 없는 로보캅을 연상시킨 상황에 대해 그는 “웃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긴장이 되어
서 혼났어요”라고 털어놓는다.
다른 마필에 비해 낮은 인기를 보인 것처럼 ‘무량무변’에 기승했던 정기용 기수, 자신도 우승까지 이어지리라곤 기대하지 못했다.
특별경주 출전이 결정되고 상대마들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면서 ‘되겠어?’, `무리한 것 같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리고 출마표가 확정되면서 1번 게이트가 되면서 선행을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때마침 일기예보에선 일요일 비 소식이 있었기에 은근히 비가 오기를 바랬다. 하지만 결국은 비는 오지 않았다.
데뷔는 빠르지만 군복무 후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기승이 이뤄졌으니 선배들에 비하면 경주 경험이 일천한 정기용 기수는 첫 특별경주 출전에 떨리는 마음도 있었지만, 막상 경주에 임해서는 부담없이 기승할 수 있었다.
바로 박대흥 조교사의 힘이었다. 큰 주문없이 선행을 갈 수 있으면 가라는 짧은 작전지시만을 한 것이다. 그리고 부담없이 타라는 말과 함께......
‘무량무변’과 호흡을 맞춰 보았던 정기용 기수의 평가에 따르면 이전까지 선행을 나서고 힘안배를 위해 제어를 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말과 기수가 싸우게 되면서 손실이 많았다고 한다.
게이트의 이점과 정기용 기수의 필사적인 선행 의지는 결국 여타 마필을 제치고 단독 선행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초반 힘을 쏟으면서 다소 무리했다는 생각은 했지만, 오히려 말과 싸우지 않으면서 3코너에서 더욱 발걸음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결승선이 서서히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었지만 그당시는 우승보다는 뒷말들에게 잡히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이윽고 결승선과의 거리가 50m로 좁혀지면서 우승이라는 낯선 단어가 그의 뇌리에 맴돌 수 있었다.
◇ 다복한 가정, 다복한 인간관계
정기용 기수가 첫 승을 기록한 것은 지난해 ‘남촌의명문’이다. 20기 기수로 2001년 데뷔 했으나 2개월동안 20전 기승만을 남겨둔 채 군복무를 위해 공백기를 가졌던 정 기수가 복귀 후 공교롭게도 20전만에 마수걸이 첫 승을 거둔 것.
첫 승과 이후 최근 주목받는 신인으로 거듭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과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지만 그 배경에는 정기용 기수의 다복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주배’로 유명한 전남 나주에서 8남매중 늦동이 막내로 태어난 정 기수는, 한마디로 귀염둥이로 부모님과 누나와 형들로부터 애정을 듬뿍 받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안해본 운동이 없을 정도로 운동매니아였던 그였지만 신장이 작았던 그가 뿌리를 내릴 만한 곳이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마사회 관련된 일을 하시던 매형이 그에게 기수가 되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권유를 했었고, 이후 그의 마음속에 기수라는 직업이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 매형이 갑자기 지원서를 가지고 온 것이 기수로의 시작점이 되었다. 전형적인 시골사람인 부모님은 경마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기수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셨기 때문에 반대는 없었다. 매형이 근무를 하고 있다는 것도 크게 작용했으리라.......
세상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듯이 운동을 좋아하는 그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직업이었지만 작게만 느꼈던 자신의 신장이 오히려 큰 편에 속하며 체중조절을 항상 신경 써야하는 처지가 됐다.
당초 기수후보생을 마치고 곧바로 군복무를 하겠다는 계획은 처음부터 어긋나기 시작했고, 6조(임형규 조교사)에서 기수로 첫 발을 내디뎠다. 당시 그에게 버팀목이 되고 표본이 된 것이 바로 배휴준 선배였다.
마치 친동생처럼 보살펴주는 따뜻함과 선배기수로서 풍부한 경험을 가르치려는 노력은 정기용 기수가 군복무 후에도 배휴준 기수를 의지할 수 있게 했다.
입대전 잠시 기승을 했지만 별다른 특이점을 보이지 못한 그가 18조와 계약을 맺은 것은 순전히 배휴준 기수의 노력 때문이었다.
결국 정기용 기수의 다복함이 배휴준 기수와의 인연을 매개로 18조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 제일 먼저 체력 보강이 급선무
후보생 시절 165cm였던 키가 이후에도 조금 자란 상태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적은 키로 인해 좋아하던 운동을 전문적으로 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큰 키(?)로 인해 체중조절을 걱정해야 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기수들이 겨울철만 되면 굉장히 힘들어한다. 바로 체중조절이 그만큼 힘들기 때문. 추위 때문에 운동이 쉽지 않고, 땀을 빼기도 어렵기 때문에 과체중인 기수들의 겨울나기는 그만큼 필사적이 된다. 심한 경우는 거의 기승을 하지도 못하고 더구나 성적을 생각하기란 언감생심이다.
군제대 후 조절을 한다고 했던 체중이 57kg까지 나가던 것을 조절하면서 정기용 기수의 얼굴은 그야말로 바짝 말라있다. 그래서 그가 가지고 있는 목표는 하루라도 빨리 수습딱지를 떼어내는 것. 기수로서 체중조절은 평생을 안고 가야할 업이지만 감량이 사라지면 그만큼 체중조절을 해야하는 폭이 좁혀지기 때문.
항상 새벽훈련 때면 오리털 파커를 착용하는 정기용 기수는 마필 훈련도 하고 자연스럽게 체중조절도 하는 이중효과가 있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새벽부터 땀을 된통 흘려야 하는 과정은 말처럼 쉽지 않다.
항상 체중조절을 위해 다이어트를 하다보니 체력이 딸리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말과 호흡을 맞추면서 거구의 마필을 제어하고 때로는 강하게 추진해야 하는데, 억지로 다이어트를 하다보니 경주에서 금새 지쳐 마필의 능력을 끌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나름대로 근력운동을 하고 있지만 체중조절의 여파를 완전히 벗어내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경주중 급해지기도 하고, 약간은 선행마를 고집하는 현상이 생기기도 한다. 아무래도 추입마에 기승해서는 자리를 잡는 것과 추입을 시작했을 때 강하게 밀어줘야 하는 부분들이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 이미지 개선과 꾸준함
항상 기수들은 모든 마필에게서 배우는 것 같다고 얘기하는 정기용 기수는 올해 이미지 개선을 하겠다는 목표와 더불어 꾸준하게 기승하면서 경험을 쌓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기억하기도 싫지만 결코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가슴속에 깊이 새겨놓은 지난해의 아픈 추억은 아직도 들추기 쉽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올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왔다고 자부하는 정기용 기수지만, 아직도 부족함이 너무 많다고 얘기한다.
최근에는 경마대회가 예전에 비해 상당히 늘어난 상태지만 불과 몇 년전만해도 경마대회에서 우승한 기수들이 다른 기수들에게 한턱을 쏘고, 마방에선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기수생활을 하면서 큰 경주에서 우승을 해보지 못한 기수들도 있을 정도다.
기승경험에 비해 빠르게 특별경주 우승이라는 기쁨을 맛본 정기용 기수가 이번 일을 계기로 더 큰 자신감을 앞세워 훌륭한 기수로 성장하길 기대해 본다.
비가 온 뒤 땅이 굳는다고 했다. 6개월 정지라는 신인으로는 생각하기 힘든 중징계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다시금 기수로, 주목받는 신인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그의 활기찬 앞날을 기원한다.
권순옥 취재부장 margo@krj.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