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장(Saddles)

안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몰랐던 나
처음 마장마술에 입문하면서 Albion 안장을 자연스럽게 인계받았다. 마장마술 입문하고 한참 흐른 후에야 안장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던 것이 조금은 창피하다. 마장마술을 대하면서도 관심이 적었던 모습 같아서 다른 마장마술 선수들에게 창피한 마음이 든다. 언젠가 우리 팀에 안장이 부족하다며 푸념을 늘어놓는 내게 감독님이 “안장이 없어서 말을 못 타냐? 말이 없어서 말을 못 타지!”라고 한 한마디 하셨다. 그 말씀이 날 안장에 대해 무디게 만들었는가 보다.

내가 사용할 목적으로 처음 마장마술 안장을 구입한 때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종합마술을 도전했을 때다. 종합 마술은 장애물 안장과 마장마술 안장이 각각 필요하다. 장애물 안장으로 마장마술을 할 수가 없고, 반대로 마장마술 안장으로 장애물 안장으로 쓸 수 없다. 이때 내가 사용할 마장 마술 안장을 생전 처음 구입했는데 안타깝게도 안장 선택권은 내게 있지 않았다. 회사 규정상 입찰이라는 단계를 거쳐야 했고 입찰 공고를 내기 위해서는 개인 기호에 모두 맞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당시 프랑스에서 생산되는 일명 BD 안장을 구입하는 입찰 공고를 냈다. 당시 BD 장애물 안장은 많은 장애물 선수들에게 애용되고 있었고, 안장의 품질과 기능도 탁월했다. 그러한 이유로 우리는 BD 마장마술 안장을 장애물 안장과 함께 구입하게 됐고, 가격도 당시에 사용되던 다른 안장보다는 상당히 비쌌다.




2002년의 추억
호주로 전지훈련을 떠나기 전에 강화 훈련을 국내에서 실시했다. 새로 구입한 마장마술 안장에 익숙하게 하기 위해서 BD 안장을 본격적으로 사용했다. 훈련에 사용된 말은 호주에서 수입된 ‘루카’와 ‘플랙’이란 말이었다. 이 두 마리 말은 우리 승마단이 보유하고 있는 말 중에 최강의 속보 반동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매일 같이 서로 조마색을 돌려주며 등자를 제거한 새 안장위에 올라가서 최대의 인내력을 발휘하며 훈련했다. 마치 오래도록 버티기 경기를 하는 모습처럼 지구력 훈련이 아닌 극기 훈련을 했다. 그런데 당시에 이 안장을 사용한 선수들 모두의 사타구니 부드러운 피부에 작지 않은 찰과상이 났다. 하지만 전의에 불타고 있는 우리 모두는 샤워를 하던 중에 그 쓰라린 고통을 웃음으로 이겨내며 영웅이 되길 원하고 있었다. “우리가 장애물 선수라서 그래”라며 사타구니에서 “피가 나도 참고 굳은살이 박여야 된다.”고 철석같이 믿었고 사타구니에 찰과상이 없는 선수는 열심히 하지 않는 선수 취급을 받기도 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마치 그 상처가 있어야지만 고통을 참고 열심히 훈련했다는 위안 아닌 위안을 했었다. 웃지 못할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고통의 시간도 지나갔다. 어디 재미있는 일화가 이뿐이겠냐 만은 마장마술 안장에 대해 설명을 하자니 가장 기억에 남는 2002년도 이야기까지 돌아보게 됐다.

Ricco는 반동이 너무나 세다. Ricco등에 앉아 여유로운 모습으로 우아하게 버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었다. 처음 Ricco를 탈 때 받은 안장이 앞서 말한 Albion 안장이다. 한동안 이 안장으로 Ricco의 강한 반동도 거뜬히 이겨내며 훈련을 했고, CG에게는 새로 구입한 가죽 냄새가 기분 좋게 만드는 Prestige안장을 사용했다. Ricco에게도 새로 구입한 Prestige 안장을 사용해 봤다. 그런데 이 안장으로는 도저히 Ricco의 강한 반동을 이겨 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쉬운 맘을 뒤로하고 Albion 안장으로 Ricco와 훈련을 하게 됐다. CG에게 사용하던 Prestige 안장이 무릎 부분이 닳아서 구멍이 났다. Ricco와 훈련에 사용하던 Albion안장은 오래돼서 그런지 안장 머리 부분에 있는 알루미늄으로 된 틀이 안장 안쪽으로 부러져 날카로운 부분이 돌출됐다. 결국 이 돌출된 부분이 Ricco 등에 상처를 냈고 이를 발견한 후에 안장을 교체해야 했다.

트랙터와 고급 세단
선수들은 저마다 선호하는 안장이 있다. 안장도 각 제품에 따라 형태가 조금씩 다르고 특성도 제각각이다. 새로 구입하는 안장은 나의 체형과 말의 체형을 생각하여 구입하고 싶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안장을 사용해보려 이곳저곳 기웃거리기도 했다. 그래서 결정한 안장이 지금 사용하고 있는 신형 Albion안장이다. 나는 이 안장을 같은 모델 2개를 사용하고 있다. 하나는 7인치이고, 하나는 7.5인치 안장이다. 7인치 안장은 Ricco에게 사용하고 있고, 7.5인치 안장은 CG에게 사용하고 있다. 처음 이 안장을 받아서 사용할 때는 적응하는 시간이 너무나 힘이 들었다. 특히 Ricco는 최악이었다. 자세도 잡지 못하겠고 기좌의 위치도 제대로 잡지 쉽지 않았다. 어느 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리고 이전에 사용했던 안장보다 안장 밑에 있는 빵이 낮아서 나의 자세는 엉거주춤해 보였다. 하지만 CG와는 그런대로 잘 맞는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CG와 Ricco의 반동을 자동차로 비유해 보면 Ricco는 트랙터, CG는 고급 중형 세단이다. 두 녀석은 반동에 극명한 차이가 있었다. Ricco 에게 7인치를 사용한 이유는 아무래도 CG보다는 Ricco의 움직임이 더 웅장해서 반동의 크기가 너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결국 내 체형에 좀 더 잘 맞는 안장을 선택하게 됐다. 반면 CG의 움직임은 Ricco만큼 웅장하지 않았고 내게 부담도 그리 크지 않았다. 그래서 Ricco의 안장보다 조금 큰 7.5인치의 안장을 사용했다.




안장 적응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처음 안장을 바꾸고 새 안장에 익숙해 질 때까지 마치 마장마술을 처음 시작했던 힘든 시간을 몽땅 옮겨다 놓은 듯 너무 불편하고 힘이 들었다. 하지만 처음 시작할 때도 그랬듯이 익숙해지기 위해서 이 악물고 쉼 없이 훈련했다. 또 훈련 후에는 안장에 기름을 먹이고 닦고 해서 안장이 조금 더 부드러워지도록 만들었다. 차차 안장은 내 몸과 일치가 되는 듯이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안장 하나 바꾸었을 뿐인데, 되게 힘들어하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Ricco의 반동은 안장 밑에 놓는 패드 하나를 바꿔도 이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물며 안장을 새로 바꿔서 적응하기 위해서는 많은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안장을 바꾼 후 무지막지하게 큰 Ricco의 움직임을 이겨내기 위해 새로 적응하는 고통을 글로는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이 안장은 지금까지 줄곧 사용해왔고 아직까지 다른 안장으로 바꾸려는 생각도 없다. 그러나 시간이 더 지나고 Ricco가 아닌 새로운 말과 함께하게 된다면 Ricco에 대한 기억을 훌훌 털어버리고 나와 새로운 말에게 적합한 멋진 안장으로 바꿔보고 싶다.


▲안장 위에서 느껴 본 반동을 토대로 CG와 Ricco를 반동을 자동차로 비유하면, Ricco는 트랙터, CG는 고급 중형 세단 같다. 그만큼 Ricco 움직임은 큼직했다.
▲처음 안장을 바꾸고 새 안장에 익숙해 질 때까지 마치 마장마술을 처음 시작했던 힘든 시간을 몽땅 옮겨다 놓은 듯 너무 불편하고 힘이 들었다. 하지만 익숙해지기 위해서 이 악물고 쉼 없이 훈련했다.


작 성 자 : 황인성 gomtiger@krj.co.kr